이종현 광운대 교수 인터뷰
“위험성 평가, 문서 작업 아닌 현장 참여로 실효성 높여야”
“VR 교육 한계… 실제 훈련·불시 점검으로 안전문화 정착”
“안전은 설계·예산 단계서부터 고려해야… 예방이 최우선”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건설현장에서의 안전사고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이종현 광운대 교수(산업안전융합연구소장)는 24일 “처벌만 강조하는 현 제도 아래서는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어렵다”며 사업주뿐 아니라 근로자 책임까지 함께 묻는 ‘예방 중심’의 안전문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회사가 안전교육과 장비를 제공해도 이를 무시한 근로자 과실로 사고가 발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문서만 남기는 위험성 평가를 ‘현장 참여형’으로 바꾸고 체험형 교육과 불시 점검을 늘려야 법 취지인 ‘중대재해 예방’이 제대로 실현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석사 과정부터 재난안전·산업안전 분야를 연구했으며 소방 연구기관 원장, 기업 재해경감(BCMS) 전문가, 국가 기반시설 평가위원 등 재난안전 전반을 두루 경험했다. 이후 광운대 산업안전융합연구소에서 재난안전 융합 연구, 건설현장 스마트 안전시스템 구축 자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중대재해 예방 매뉴얼과 위험성 평가 모델을 보급하고 있다.
◆“근로자 책임도 명확히 해야 사고 줄어”
이 교수는 먼저 “중대재해처벌법이 사업주 책임을 강화한 건 맞지만 근로자 책임 역시 명확히 하지 않으면 사고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나는 원인을 살펴보면 안전장비나 교육 프로그램이 충분히 마련돼 있음에도 근로자가 규정을 무시하거나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아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발생 시 사회적 비난은 주로 ‘기업 처벌’에 쏠리고 근로자 과실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다. 이 교수는 “회사에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장비를 지원해도 현장에서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근로자 스스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일부 져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근로자가 잘못했다’고 몰아가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근로자의 적극적 실천이 곧 사고를 줄이는 핵심”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언론도 사고가 발생하면 근로자 과실 여부를 함께 보도해 ‘근로자 스스로 지킬 의무가 있다’는 점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래야만 안전에 대한 공동책임 의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업주만이 아니라 근로자와의 ‘쌍방 책임’ 개념이 뚜렷해지면 사고 예방 조치가 현장에서 더 진지하게 이뤄진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위험성 평가, 서류 아닌 ‘현장’ 참여가 핵심
이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건설현장에서 사망자가 쉽게 줄지 않는 이유에 대해 “위험성 평가가 문서 작업으로만 끝나는 ‘캐비닛 용도’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법에 따르면 공정별·장비별·근로자 숙련도별로 작업 전 위험 요인을 세부적으로 파악하고 현장 근로자와 감독관이 함께 토론해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건설현장에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서류만 작성해 보관하고 정작 작업자에게는 내용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 경우가 잦다. 이 교수는 “위험성 평가는 현장 근로자가 실제 참여해야 의미가 있다. 감독관이 서명만 받고 끝내지 말고 공정이 달라지거나 인원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재평가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컨대 당일 작업에 새롭게 투입되는 1년 미만 초보 근로자나 외국인 근로자가 있다면 숙련자가 맡아야 할 위험 작업에는 배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판단을 하려면 ‘공정별 위험요소’와 ‘근로자 특성’이 미리 공유돼야 하고 이를 서류가 아닌 실제 협의 과정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며 “이런 절차가 제대로 이뤄질수록 현장의 사고위험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체험형 교육·불시 점검’으로 안전문화 정착
이 교수는 안전교육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체험형·실전형 교육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내에서 흔히 시도되는 VR·AR 영상교육은 집중도가 떨어지고 대다수가 영상을 틀어놓고 과정을 이수했다는 ‘형식적’ 기록만 남기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진짜 사고 상황에 가까운 훈련이 중요하다. 실제 화재를 가정해 연기를 내 대피하게 하거나 불시에 현장을 점검해 문제점을 즉각 지적하는 식으로 ‘몸으로 익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 등 선진국은 공공기관 담당자나 노동부 관계자가 별도 예고 없이 현장을 방문해 안전 수칙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은 대부분의 ‘안전 훈련’이 사전 공지와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보여주기식 행사로 끝날 때가 많다.
이 교수는 “불시에 진행되는 훈련이어야만 현장에서 진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미리 시나리오를 알려주고 훈련을 하면 잘 갖춰진 모습만 보여줄 뿐”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불시 점검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근로자들도 안전교육을 별도의 업무로 여기지 말고 자기 생존에 직결된 필수 절차라 생각해야 한다”면서 “오랜 시간 꾸준히 이런 실천이 쌓여야 안전문화가 자리 잡는다. 중·장기적으로는 대학이나 직업훈련기관에서도 실습 위주의 안전교육을 필수 교과로 편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방 중심 안전관리, 설계·예산 단계부터 고려해야
이 교수는 “안전 문제는 현장 실행 단계만 강조할 게 아니라 사업 기획과 설계·예산 단계부터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영진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안전설비 투자를 후순위로 미루거나 무리한 공사 기간 단축을 요구하는 구조에선 중대재해가 발생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는 “오너나 경영진이 안전을 투자비 회수가 힘든 ‘부수적 요소’로만 보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가장 우선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설계·시공 전 과정에서 ‘안전 확보’를 전제로 일정을 잡아야 한다”며 “현장에만 ‘빨리 끝내라’고 독려하면서 간단한 서류보고로 평가를 대신한다면 근로자들도 안전보다는 공정을 빨리 맞추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의 진정한 취지를 살리려면 법을 통한 처벌이 아니라 사고 발생 전 단계에서 예방 체계를 갖추는 게 핵심이라는 게 이 교수의 견해다. 사업주의 안전 경영 의지와 근로자의 참여 그리고 정부·지자체 차원의 불시 점검과 정책 지원이 동시에 진행될 때 비로소 중대재해처벌법이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법이 시행되며 산업현장의 안전의식이 과거보다 높아진 건 분명하다”면서도 “남은 과제는 처벌보다는 예방에 방점을 찍고 설계·예산 단계부터 현장 근로자의 참여교육까지 전 과정에서 안전이 최우선 가치임을 인식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과정을 꾸준히 추진해야 진정한 ‘중대재해 없는 사회’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 천지일보(https://www.newscj.com)